[BooK]세상을 바꾸는 여성 엔지니어_스무 살 시절의 나에게 보내는 위로

작성자
(주)다우진유전자연구소
작성일
2022-11-30 14:25
조회
434


스무 살 시절의 나에게 보내는 위로

울산대학교 미생물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고려대학교 의학 과에서 종양생물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원자력병원 실험치료 연구실과 벤처기업 아이디진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후, 유전자감식 전문기 업인 ㈜다우진유전자연구소를 설립하여 20여 년간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사 단법인 해외입양인연대 이사와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 이사 및 한국여성발 명협회 부회장 활동을 하고 있으며, 산업 현장에서 여성 과학 인력의 역량 강 화와 유전자감식 분야의 혁신적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가는 길

윙윙, 핸드폰 진동 소리에 잠을 깼다. 핸드폰을 보니 방송국 PD 에게서 온 전화다. 무슨 급한 일인가 받아 보니 최근에 수경사에 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것에 대한 방송이 나간 적 있는 데, 그 방송을 본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인 것 같다고 방송국에 전 화가 와서 급하게 내일까지 아버지의 친아이가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꼭 좀 검사를 해 달라고 부탁한다.
참 공교롭게도 간만에 우리 아이들을 키워 주시는 친정엄마와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강원도로 가족 휴가를 간 다음 날 아침이라 서 더욱 난감했다. 일을 생각하면 바로 서울로 출발해야 하고 가 족을 생각하면 워터파크에서 신나게 놀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있 는 아이들 생각에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 다. 담당 PD한테 “미안하지만 가족과 휴가를 와서 어려울 것 같 다.”고 얘기하니 “죄송하지만 이번에 꼭 좀 부탁드립니다. 사안이매우 시급합니다.”라고 했다.
아이 아버지와 아이 엄마는 결혼 후 시댁에 들어가서 신혼살림 을 차렸는데, 아이 아빠가 군대에 가게 되서 아이 엄마 혼자 아이 를 키우며 시댁에서 살았단다. 남편 없는 고된 시집살이에 아이 엄마가 가출하게 되고, 시부모님이 아이를 수경사에 맡겼다고 한 다. 제대 후 집에 온 아이 아빠한테 시부모는 아이 엄마가 가출해 서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냈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이를 수경사에 보낸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
갑자기 가족이 파탄 난 사실을 알게 된 아이 아빠는 술에 빠져 삶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살다가 우연히 TV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아이와 닮은 아이를 발견하고는 다급히 방송국에 연락했다고 한 다. 그 당시 아이 나이는 여섯 살쯤이라는데, 자꾸 우리 큰아이 얼 굴과 겹쳐서 떠오르는 아이 얼굴을 생각해 보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자고 있는 남편을 조심히 깨우며 사정을 말하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상의하니, 남편이 점심 먹고 다 같이 서울로 출발하자고 했다. 갑작스런 상황인데도 이해해 주는 남편이 무지 고마웠다. 아이들과 친정엄마한테는 무척이나 미안했지만 상황이 급해서 미 안해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아이들을 깨우고 잠깐 물놀이를 한 후 바로 서울로 출발해서 저녁때쯤 회사에 도착했다.
토요일 늦은 오후 퀵으로 아이 아빠와 아이 검체를 받아 들고 연 구실로 들어가 시험 분석을 수행해 일요일 오전 11시쯤 결과를 분 석해 보니 아이의 친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담당 PD한테 결과를 통보한 후에야 한숨을 돌렸다.
아이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우리 아이와 비슷한 나이의 그 아이. 어땠을까? 갑자기 엄마가 없어지고 아무것도 모 른 채 낯선 곳에 맡겨져 울고 있었을 그 아이. 얼마나 많은 밤을 엄마와 아빠를 찾으며 울었을까? 비슷한 또래인 우리 아이는 할머 니와 같이 있어도 엄마가 아침에 출근하려면 다리를 붙잡고 안 떨 어지려고 우는데….
그리고 갑자기 아내와 아이를 잃어버린 그 아이의 아빠 얼굴도 떠올랐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짐작만으로도 가슴이 저며 온다. 담당 PD를 통해 아이 아빠가 무지 감사해하며 헤어진 가족
을 다시 찾게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꼭 가족이 다시 모여서 행복하 게 살겠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우리 가족들한테는 많이 미안했지 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밀리던 차 안에서 서울에 빨리 도착하지 못할까 봐 마음을 졸였 던 순간들, 친정엄마와 아이들 그리고 남편한테 미안해서 계속 눈 치를 봐야 했던 순간들, 혹시 급하게 검사가 들어가서 데이터가 잘 안 나오면 어떻게 하나 마음을 졸이던 순간들…. 그 모든 순간 들이 한 번에 보상을 받는 듯 마음이 너무 행복해지는 순간이었 다. 힘들어 지쳐서 그만두고 싶은데도 나로 하여금 계속 일을 하 게 만드는 마력이 그 안에 숨어 있었다.
전공을 선택하기까지 처음부터 이런 일을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초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아무것도 67 아닌 얌전하고 평범한 아이를 너무도 이뻐해 주셔서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 바람에 선생님이 꿈이 되었다.
중학교 시절엔 운이 좋았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학교 대표로 선발되어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어린이 과학동산이라는 프 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 원자력발전소 등을 견학도 가 보고 교육 청에서 실시한 과학실험을 처음 체험하게 되었다. 그 후론 꿈이 과학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수학이 좋아서 수학만 공부하다가 제일 싫어하는 생물 관련 미생물학과를 진학하게 되고, 대학과 학과가 맘에 안 들어 매일 술독에 빠져 살았다. 그렇게 젊음을 낭비하듯 나를 괴롭히며 살다가 문득 누가 시켜서 들어간 것도 아니고 본인 이 선택해서 들어가서는 제대로 노력해 보지도 않고 불평불만만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도 비겁해 보여서 학교를 자퇴하려는 마 음을 고쳐먹고 제대로 한번 공부해 보고 그래도 싫으면 그때 그만 두자고 다짐했다.
그 당시 국내에 처음 분자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소개되었는데 내겐 무척 재밌게 느껴져서 열심히 해 보기로 했다. 열심히 공부 하니 당연히 성적은 잘 나오게 되고 ‘내가 이 분야에 소질이 있 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분자생물학 관련 전 공 실험을 해 봤을 때 솔직히 이 분야가 나한테 좀 맞는다는 걸 알 게 됐다.

꿈 그리고 일

꿈이란 뭘까? 직접 본인이 뭘 체험해 보지 않으면 내가 뭘 좋아 하는지 잘하는지 알 수 없다. 지금의 교육 방식이 좋은 점도 많지 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우린 너무 빨리 자신의 꿈과 미래를 결정하 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나이에 대체 뭘 안다고 미래 를 결정하고 그 분야를 꿈으로 결정해서 관련 스펙을 쌓고 대학을 가고….

그냥 자신이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천천히 들여다봐도 좋을 것 같다. 나처럼 제일 싫어하는 학문 분야에 들어가서 자기가 잘하는 분야를 찾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 까, 아니면 잘하는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내 생각에는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하 면 좋아하게 되지만, 좋아한다고 다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 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직업인은 전문가이다. 전문가는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이라는 보상을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설픈 아마추 어처럼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일은 전문가처럼 프로처럼 해야 한 다. 그러기에 본인이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하고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내 경 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좋아하던 일도 직업이 되는 순간 싫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일이란 무엇일까? 내가 일 중독자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일이란 나 자신이다.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나란 존재를 일깨워 주는 존재 이기도 하다. 매일매일 나의 노력으로 나를 발전시켜 주기도 하고 내가 교만할 때는 나를 바닥으로 떨어뜨려 다시 나를 일어나게 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 자세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지금 하는 일을 만나 회사를 운영한 지도 올해로 20년이 된다. 20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때로는 좌절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그마한 성공에 취해 영원한 것처럼 착각했던 때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겪는 동안 나는 더 단단해지고 세상을 바라

보는 마음에 감사함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 지만 매 순간 감사하지 않을 때가 없다. 이렇게 살아 있어서 사랑 하는 가족과 직원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가급적 나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 이 적고 나를 통해 누군가가 희망과 열정을 품어서 보다 행복한 삶 을 살아가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나 자신에게 힘이 되고 내가 살아가는 데 큰 행복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스무 살 시절의 나에게

우연히 30년 전 대학 시절 일기장을 발견했다. 스무 살 시절 그 때의 나는 무엇이 그리 힘든지 괴롭다는 말만 일기장에 가득했다. 불투명한 미래, 지방대에 인기 없는 학과, 스스로를 보잘것없다고 느끼던 나,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매일매일 술을 먹으며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책하던 나.
그 시절의 나를 만나면 얘기해 주고 싶다. 넌 보잘것없거나 쓸 모없지 않고 그 자체로 아주 잘 살고 있으며 결국엔 네가 하고 싶 은 일을 찾아서 잘 살게 된다고, 그러니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말 고 지금까지도 잘해 왔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다고…. 따뜻한 격 려와 칭찬을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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